2012년의 3월과 4월은 어찌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사라져버렸다.
3월엔 1일부터 25일까지, 3주도 넘는 기간 동안 한국에 출장을 다녀왔는데, 정말 일만 하느라, 가족들하고 시간을 하나도 못보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건, 어디에 정기적으로 현진이를 맡길 곳이 없는 상황에서, 주중과 주말의 구분도 없이, 일하기.
결국은 자주 연락도 드리지 않던, 이모께 주중에 현진이를 봐주십사 부탁하고 (나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결국은 집안 구석구석까지 청소를 싹 해주셨다;;;), 주말에는 동생에게 부탁하고, 게다가 연구에 참여해줄 학생의 섭외에는 동생 두 명, 후배, 선배, 그리고 예전에 강의나갔던 학교의 학생(이라기엔 나랑 동갑;;;)까지 총동원하는 등 각종 민폐의 조합을 통해서 맡은 바 임무를 마칠 수 있었다... 아주 야심차게, 거의 50시간 정도의 인터뷰를 녹음해왔는데, 이걸 언제 다 듣고, 정리할 수 있을지...
그렇게 한국에 다녀온 바로 다음 주인, 4월 첫 주는 회사에서 주최하는 학회 관련 일로 많이 바빴다.
그 기간 동안에는 일요일에도 나와야했고, 저녁에도 이런 저런 모임들이 있을 예정이어서,
그 기간에만 현진이를 봐 줄 시터를 찾아야하나, 여러가지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현진이 아빠가 1주일 동안 와줬다.
어차피 시터를 쓰려면 돈은 드는 거라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마일리지 표로 올 수 있었으니,
경제적으로도 조금 플러스, 그리고 돈으로는 살 수 없는 현진이와 아빠의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이건 내 입장의 해석???)
첫 주에 그렇게 현진이 아빠가 왔다간 것 같지도 않게 (거의 1달을 함께 할 수 있었는데, 식사를 같이 한 횟수도 손에 꼽을 만하다;;;) 가고 나서는 그냥 나머지 4월을 붕 떠서 지낸 것 같다. 회사에 맨날 나오는데, 뭘 하는지 잘 모르겠고...
그러는 사이에 현진이의 4돌 생일이 왔고, 나는 아주 무리를 해서 친구를 무려 15명이나 초대하는 파티를 베풀어주었다. 그런데, 이 날 파티를 진행해준 선생님 두 분이 진심으로 열과 성의를 다해서 놀아주셔서, 돈을 쓴 보람은 있었다, 물론 그 돈이 아깝지 않은 건 아니다만.

5월 16일이면 어느 새 내가 이 회사에서 일한 지 1년이 된다.
실은 여기서 겪은 여러가지 일들, 일과 관련해서 혹은 인간관계와 관련해서 겪은 그 간의 감정의 기복을 생각하면,
이제 겨우 1년밖에 안됐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여러가지로 부딪히고 배우면서 1년이라는 시간을 살았다.
이 기간을 살면서 느끼게 된 것을 짧게 정리하자면, '한결같기란 참 어렵다'는 것이다.
어느 날 반짝 마음이 동해서 현진이한테 엄마의 정성이 가득 담긴 저녁상을 차려주는 일도,
저녁먹고 나서 여유롭게 현진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놀아주는 일도,
여기저기 어질러진 집안 꼬라지(!)를 보다가 갑자기 화가 나서는 잠도 안자고 12시 넘어서까지 집안 정리를 하는 것도,
욕심껏 일을 잘 하고 싶다는 생각에 현진이가 잠들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열심히 일을 하는 것도,
모두가 한결같이 꾸준하게 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어디까지가 욕심이고 어디까지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인지.
뾰족한 답도 없고,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이런 문제를 가끔씩 고민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이런 고민도 사치로 느껴질만큼, 당장 해야하는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가면서 살아가는 하루 하루들이 모여서
벌써 어느새 1년을 보냈다. 그래, 삶이 뭐 있겠나, 이렇게 하루 하루 살아가는거지...
그치만, 그래도 비정기적으로라도 나를 좀 도와줄 수 있는, 우렁각시가 나한테도 있으면 정말 좋겠다!
3월엔 1일부터 25일까지, 3주도 넘는 기간 동안 한국에 출장을 다녀왔는데, 정말 일만 하느라, 가족들하고 시간을 하나도 못보냈다.
가장 문제가 되었던 건, 어디에 정기적으로 현진이를 맡길 곳이 없는 상황에서, 주중과 주말의 구분도 없이, 일하기.
결국은 자주 연락도 드리지 않던, 이모께 주중에 현진이를 봐주십사 부탁하고 (나는 의도하지 않았으나, 결국은 집안 구석구석까지 청소를 싹 해주셨다;;;), 주말에는 동생에게 부탁하고, 게다가 연구에 참여해줄 학생의 섭외에는 동생 두 명, 후배, 선배, 그리고 예전에 강의나갔던 학교의 학생(이라기엔 나랑 동갑;;;)까지 총동원하는 등 각종 민폐의 조합을 통해서 맡은 바 임무를 마칠 수 있었다... 아주 야심차게, 거의 50시간 정도의 인터뷰를 녹음해왔는데, 이걸 언제 다 듣고, 정리할 수 있을지...
그렇게 한국에 다녀온 바로 다음 주인, 4월 첫 주는 회사에서 주최하는 학회 관련 일로 많이 바빴다.
그 기간 동안에는 일요일에도 나와야했고, 저녁에도 이런 저런 모임들이 있을 예정이어서,
그 기간에만 현진이를 봐 줄 시터를 찾아야하나, 여러가지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현진이 아빠가 1주일 동안 와줬다.
어차피 시터를 쓰려면 돈은 드는 거라고 작정하고 있었는데, 마일리지 표로 올 수 있었으니,
경제적으로도 조금 플러스, 그리고 돈으로는 살 수 없는 현진이와 아빠의 추억을 만들 수 있었다. (이건 내 입장의 해석???)
첫 주에 그렇게 현진이 아빠가 왔다간 것 같지도 않게 (거의 1달을 함께 할 수 있었는데, 식사를 같이 한 횟수도 손에 꼽을 만하다;;;) 가고 나서는 그냥 나머지 4월을 붕 떠서 지낸 것 같다. 회사에 맨날 나오는데, 뭘 하는지 잘 모르겠고...
그러는 사이에 현진이의 4돌 생일이 왔고, 나는 아주 무리를 해서 친구를 무려 15명이나 초대하는 파티를 베풀어주었다. 그런데, 이 날 파티를 진행해준 선생님 두 분이 진심으로 열과 성의를 다해서 놀아주셔서, 돈을 쓴 보람은 있었다, 물론 그 돈이 아깝지 않은 건 아니다만.

단체사진.
웃긴 표정을 지어보이라고 하자, 이런 표정들을... ^^
웃긴 표정을 지어보이라고 하자, 이런 표정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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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6일이면 어느 새 내가 이 회사에서 일한 지 1년이 된다.
실은 여기서 겪은 여러가지 일들, 일과 관련해서 혹은 인간관계와 관련해서 겪은 그 간의 감정의 기복을 생각하면,
이제 겨우 1년밖에 안됐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쨌든, 여러가지로 부딪히고 배우면서 1년이라는 시간을 살았다.
이 기간을 살면서 느끼게 된 것을 짧게 정리하자면, '한결같기란 참 어렵다'는 것이다.
어느 날 반짝 마음이 동해서 현진이한테 엄마의 정성이 가득 담긴 저녁상을 차려주는 일도,
저녁먹고 나서 여유롭게 현진이에게 책을 읽어주거나 놀아주는 일도,
여기저기 어질러진 집안 꼬라지(!)를 보다가 갑자기 화가 나서는 잠도 안자고 12시 넘어서까지 집안 정리를 하는 것도,
욕심껏 일을 잘 하고 싶다는 생각에 현진이가 잠들자마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열심히 일을 하는 것도,
모두가 한결같이 꾸준하게 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어디까지가 욕심이고 어디까지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인지.
뾰족한 답도 없고, 누구도 대신 해줄 수 없는 이런 문제를 가끔씩 고민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이런 고민도 사치로 느껴질만큼, 당장 해야하는 일들을 하나씩 해결해가면서 살아가는 하루 하루들이 모여서
벌써 어느새 1년을 보냈다. 그래, 삶이 뭐 있겠나, 이렇게 하루 하루 살아가는거지...
그치만, 그래도 비정기적으로라도 나를 좀 도와줄 수 있는, 우렁각시가 나한테도 있으면 정말 좋겠다!

나 혼자만의 착각이라해도,
'엄마가 최고예요!'라고 해주는 거라고, 믿으면서 힘을 내야겠다.
우리집의 슈퍼 히어로, 네가 있어서 웃고, 네 덕분에 힘을 낸다 ^^
(물론 너 때문에 더 힘들다고 느끼는 때로 분명히 있다 --;;;;)
'엄마가 최고예요!'라고 해주는 거라고, 믿으면서 힘을 내야겠다.
우리집의 슈퍼 히어로, 네가 있어서 웃고, 네 덕분에 힘을 낸다 ^^
(물론 너 때문에 더 힘들다고 느끼는 때로 분명히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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